융의 글을 읽다가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자아가 자유로움을 경험하려면 지평을 확대해 성격 전체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이 글을 보자마자 갑자기 나의 내면이 거울에 비친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긍정적인 면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면은 감추고 외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모습, 외로운 모습, 슬퍼하는 모습, 사랑받길 원하는 모습, 어른스러운 모습, 누군가를 걱정하는 모습 등 무수히 많은 나의 모습들을 억누르며 무시하고 살았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나를 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히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긍정적인 모습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영웅화하고 특별한 존재로 느끼려 노력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특별한 존재여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였고 자아는 점점 팽창되어 갔다.
자아는 점점 비대해졌고 커져버린 자아의 크기만큼 타인도 의식하게 되어 사회생활이 힘들어졌다.
이러한 악화의 과정은 자기자신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안 좋게 생각하는 나의 모습들을 상대방에게 던지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면 나를 싫어하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향한 것이다.
실수하는 모습, 위축된 모습, 허둥대는 모습, 여린 모습, 사랑받고 싶은 모습, 따뜻한 모습 등을 보면 상대방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난 상대방을 밉게 본 것이다.
이러한 투사는 나의 회피형 성격과 맞물려 타인을 밀어내고 멀리하는 태도를 강화하는 데 쓰였다.
융의 글은 나의 이런 부분들을 마치 거울을 통해 나를 보듯 내 내면을 보여준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내가 나와 잘지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부정적인 면을 외면하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부정적 투사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나는 통합된 나로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거나 내가 나의 모습에 실망했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자.
‘이것 또한 나의 일부다’
‘그 동안 모른척 외면하며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는 이런 나의 모습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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