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에서 잊을 수 없는 따뜻한 기억
초결울의 쌀쌀한 날씨였다. 바짝 민 머리에는 대삿갓을 쓰고 감색 무명옷을 입고서 맨발에 짚신 차림으로 다니며 집집마다 문 앞에 서서 독경을 하고 시주를 청했다. 탁발 수행에 익숙지 않는 내게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짚신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은 아스팔트에 쓸려 피가 났고, 그 고통을 견디며 한나절이나 걸었더니 몸은 마치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지쳐버렸다. 그래도 꿋꿋이 선배 수행승과 함께 몇 시간이나 탁발 수행을 계속한 다음,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절로 향했다.
그렇게 지친 몸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돌아가던 도중 어떤 공원에 이르렀을 때였다. 공원을 청소하고 있던 작업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우리를 보자마자 한 손에 빗자루를 든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내가 메고 있던 자루 안에 500엔짜리 동전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그 여성은 결코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는데도 일개 수행승에게 500엔을 희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한 눈곱만큼도 교만한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마음은 그때까지 65년을 사는 동안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신선하고 순수한 것이었다. 나는 그 여성의 자연스러운 자비로움을 통해 틀림없이 부처의 사랑을 접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할아버지가 승려로 계실 때의 일화를 소개한 부분이다.
가즈오 할아버지에 비하면 짧은 삶이지만 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처의 사랑을 접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는데 웃음이 많고 성격이 부드러우며 PMP로 영화와 애니를 자주 보던 친구였다.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면 평범한 키에 다부진 몸으로 코뿔소처럼 뛰어나가며 수비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러다 한 달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다.
3주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30분동안 머릿속이 텅 빈 채로 멈춰있었다.
통화를 했던 친구와 다음날 장례식장에 같이 가기로 했다.
다음 날 퇴근 후 병원 근처에 먼저 도착하여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으려고 주문을 할 때였다.
머리가 짧은 여성 점원분이셨는데 어떤 커피를 주문할지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스폐셜 티 메뉴판을 펼쳐 보여주면서 이것도 한 번 보시라고 안내해주셨다.
그 때 그 분의 표정과 목소리가 무척 따뜻했다.
그 때의 나는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한 상태였는데 그 분 덕분에 어두운 감정이 많이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 분에게서 느낀 그 잠깐의 안온함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이 경험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한 기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만족은 현자의 돌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손에 넣은들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참으로 맞는 맞이다.
가즈오 할아버지가 뼈를 때려주신다.
삶에 만족했던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타의 마음을 갖기 위해선 먼저 삶에서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 만족의 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삶에 대한 만족감을 늘려가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가즈오 할아버지는 여기에 덧붙여서 만족에 대한 오해도 짚어주신다.
단, '만족할 줄 아는 삶'이라고 해서 결코 현재에 만족하고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거나 정체감, 허탈감에 둘러싸여 세월만 보내는 삶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만족이라고 보기보다는 삶의 정지라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확실히 만족과 정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즈오 할아버지는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만족의 뜻을 알려주신다.
만족을 아는 삶이란 인간이 가진 '고도의 지혜'로 새로운 것이 잇달아 생겨나고 건전한 신진대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며 활력과 창조성으로 가득 찬 것을 말한다.
그렇다.
자신이 가진 지혜로 풍부한 창조성을 발휘하는 삶.
신진대사와 더불어 세상의 일부로서 순환하는 삶
이것이 삶에 만족을 안겨다주는 것이다.
즉, 창조와 순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레 삶에 만족하는 마음도 생겨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오늘 자신이 느낀 감정이나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펜으로 쓴다고 해보자.
이것은 창조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블로그에 올린다고 해보자.
이것은 순환에 해당한다.
이러한 창조와 순환의 활동이 삶에 만족과 자유를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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