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에서 잠을 자는데 추워서 중간에 몇 번 깼다.
11시에 한 번 깼고 새벽 4시에 또 깼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깼을 땐 침낭을 반드시 가져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수건을 꺼내서 위아래로 껴넣고 다시 잤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오전 8시였다.
텐트에서 잔 것 치고는 꽤 푹 잤다.
10분 정도 잠깨려고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서 짐정리를 시작했다.
짐정리하는 동안 커피 물을 끓이려고 스토브를 켜고 주전자를 올렸다.
그리곤 다시 짐정리를 시작했다.
짐정리에는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아무래도 혼자 배낭여행을 오다보니 짐이 적었다.
그렇게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는 중에 바다가 너무 이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바다가 제일 이쁜 것 같다.
사진 찍고 기분이 좋아져서 길을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펜스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왠걸.
길이 막혀 있었다. 이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망상해수욕장의 끝에서 사진을 남기고 다시 길을 되돌아갔다.
다시 정문쪽으로 가서 굴다리를 지나 도로변을 따라 해파랑길을 걸었다.
레미콘 공장을 지나 산업공단을 거쳐 옥계 해변에 도착했다.
도착했는데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 여성 수련원이 보이길래 무작정 들어가 물을 좀 마셔도 될 지 여쭤봤다.
데스크 안내해주시는 분이 정수기 위치를 알려주셔서 물을 벌컥벌컥 먹었다.
그러고는 나와서 벤치에 10분 정도 앉아서 쉬었다.
오래 쉬면 안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계속 걸어서 금진해변에 도착했다.
11시가 좀 넘은 시간이라 밥 먹을 때가 되어서 주변을 살펴보던 중 수제 햄버거 가게를 발견해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디스코 버거이다.
오늘 이 한끼로 식사를 끝낼 것이기 때문에 햄버거를 두 개 시켰다.
왼쪽이 죽여주는 버거이고 오른쪽이 디스코 버거이다.
일단 제일 맛있다는 죽여주는 버거 먼저 먹었다.
거의 뭐 이건 흡입했다.
다음으로는 디스코버거 세트를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배불리 먹고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려는데 주방에 일이 있으신지 들어가시길래 같이 계시던 지인분께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사장님 지인 분께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셨다.
지도에서 찾아봤는데 오늘은 안인항까지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사장님 지인 분께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며 ‘조심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해주셨다.
따뜻하고 좋았다.
이런 인사하나에도 감동을 받다니. 나란 남자 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금잔항을 거쳐 심곡항으로 갔다.
가는 길에 바다를 계속 보며 걸었는데 왜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마음에 쌓인게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서글픈 마음이 들어 한동안 눈물을 훔치며 걸어 갔다.
그래도 심곡항 도착할 때즈음엔 진정이 되어서 기분이 다시 괜찮아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해파랑길 지도에 표시된 길이 안보이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따라서 걸어갔다.
오르막길이 이어졌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날도 더워서 온 몸이 땀으로 다 젖었다.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든거라 거의 등산하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CU 편의점이 나타났다.
잽싸게 들어가 물을 사고 사이다를 한 캔 샀다.
그렇게 쉬면서 사이다를 한 잔 했다.
사이다를 마시면서 걷는 이유는 휴식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그만큼 너무도 달콤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계속 쉴 순 없는 법.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멀리 마을이 보였다.
도착지가 보이니 절로 힘이 났다.
그렇게 성큼성큼 내려가 모래시계 공원에 도착했다.
정동진 글자가 이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더운 날씨에 계속 걸어서 그런지 많이 지쳐서 구경은 하지 않고 곧장 정동진 역으로 갔다.
역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역사안에 배낭을 풀고 잠시 쉬는 동안 고민에 빠졌다.
오늘 해파랑길 36코스를 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을 하는 이유는 이 길이 평지길이 아니라 등산로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은 3시이기때문에 정동진에서 걸음을 멈춘다면 시간이 아까웠다.
하지만 등산로를 걷자니 체력이 따라 줄 지 걱정이었다.
36코스 중간에 완전히 퍼져버려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도 걷기 위해 온 해파랑길이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에 계신 어르신께 이 산을 타고 안인항에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여쭤봤다.
어르신께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릴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시간으로 보면 딱 맞았다.
그렇게 어르신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스틱을 꺼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경사가 가파르고 밞는 돌들이 다들 높았다.
그래서 오르막을 다 올랐을 때쯤 빈혈기가 오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도를 보고 경악했다.
아직 10분의 1도 못 온 것이다.
’아 다시 내려가야할까, 아니면 이대로 나아가야 할까‘
다시 이 고민이 시작되었다.
생각이 길어지면 출발하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가보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산을 타는데 오르막길이 정말 많이 나왔다.
제발 평지좀 나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첫 고지에 올랐을 때 짐을 풀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가져온 평창수 작은 페트에는 물이 반만 담겨 있었다.
‘아, 물 좀 더 사올걸..’
물이 별로 없기에 원래였다면 한 번에 다 마셨겠지만 한모금 반만 마시고 다시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산을 타는데 정말이지 도저히 안인항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11kg 배낭을 메고 바닥을 찍은 체력으로 9km 등산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때부터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도 다먹어서 갈증에 시달리고 체력도 다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조난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자 오르막을 오를 때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온 몸이 두려움에 굳어있었다.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짐을 풀고 앉아서 명상을 했다.
요즘에는 자주 못하지만 예전부터 집에서 꽤 자주 명상을 했던터라 갑자기 명상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게 가부좌로 앉아 5분정도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에 다시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에 압도되어있던 마음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다시 안정을 찾은 것이다.
정말이지 이 때의 경험을 살면서 잊지 못할 것이다.
명상하면서 보았던 풍경인데 명상 전에는 두렵게 보이던 것이 명상 후에는 차분하게 보였다.
그렇게 오르막길이 있을 때마다 휴식을 취하고 마음이 불안해지면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죽을 힘을 다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안인항까지는 4.9km 가 남아 있었다.
이 때 정말 자포자기 심정으로 119에 신고를 해야되나 생각하며 대자로 뻗어 누워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 소리가 들리더니 한 마리 였던게 서로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8~9 마리 까지 모였다.
(사진에는 까마귀들이 떠나갈 때 찍은거라 다 담지는 못했다.)
그 떄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이 내가 죽으면 나를 뜯어 먹으려고 까마귀들을 불러모으는구나.‘
그러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스틱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르막길을 정말 징하게 나왔다.
질려버릴 정도로 많이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르막길이 나온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으면 안인항에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르막길을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안좋아졌다.
힘든 것도 문제지만 해가 뉘엿뉘역 지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없는 체력에 속도까지 내려 무진장 애를 쓰며 산을 탔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명상으로 마음을 다독여서 그런지 주변 풍경들은 눈에 들어왔다.
많이 올라오긴 했구나.
영혼도 내려놓고 오로지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한다는 일념하나로 움직였다.
이제는 정말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즈음 저 멀리 안인항이 보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올라왔다.
등산로를 걷기 전부터 고민했고 등산로를 걸으면서도 계속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결국 해낸것이다.
나를 가로막는 것은 나라는 것을 이 때 깨달았다.
기쁨도 잠시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내려가야했다.
그렇게 30분정도 걸었을 때 2km 를 남겨두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이 때에는 내려가야한다는 생각뿐이라 무서움도 못느꼈던 것 같다.
나는 달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멀리 보이는 안인항이 가까워짐에 감사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렸을까.
제발 끝나라라고 속으로 수십, 수백번을 되뇌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걸어가야하기에 ‘마을에 도착하면 파워에이드를 벌컥벌컥 마셔야지’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드디어 마을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이 때는 정말이지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저 계단을 내려갈 때의 짜릿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몸은 지칠대로 지친상태이지만, 마음에서는 세상의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을 슈퍼로 가서 파워에이드 1.5L 짜리를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살면서 오늘을 잊진 못할 것 같다.
살면서 오늘처럼 힘든 날도 없었다.
하지만 무사히 안인항에 도착했고 해낸 것이다.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오늘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모텔에서 숙박해야겠다.
푹 쉬고 내일 또 걷자.
숙소로 가는 길에 달빛이 비친 바다가 이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좀 더 정리해서 내일 적어봐야겠다.
오늘 걷느라 정말 고생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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